그렇다면 하이바네가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.
"죄를 아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. 너는 죄인인가?"
쿠우의 홀로서기로 라카가 심적 상처를 받고 방황할 때 토가는 그녀에게 위와 같이 질문한다.
토가는 츠키미츠(츠키미츠는 일어로 '죄를 지은 자'라는 뜻이라고 한다.)에게 위와 같이 어느 쪽으로도 대답할 수 없는 딜레마적인 선문답을 한다.
만약 죄인이라고 대답한다면 이미 자기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죄인이 아니게 되고, 죄인이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.
결론적으로 역설적이지만 죄를 아는 것만으로는 이 선문답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다.
츠키미츠의 숙명에서 또한 벗어날 수 없다.
생명도 되찾을 수 없다.
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.
최종적으로 본 애니는 그것을 '사랑'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다.
사랑받고 또 사랑하는 것, 츠키미츠였던 '레키'와 '라카'를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한 건 사랑이었다. 라카는 '새'로 상징되는 무척 소중한 존재의 사랑을, 레키는 라카가 진정으로 레키를 구하고 싶어한다는 그녀의 본심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었다.
'죄'의 진짜 이름은 '상처'다.
죄가 죄인 근본 이유는 그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상처입히기 때문이다.
때로 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만큼 깊은 상처를.
그렇다면 그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이야말로 결국 죄의 논리를 넘어설 수
있는 유일한 하나의 출구가 아닐까,
있는 유일한 하나의 출구가 아닐까,
이 애니의 메시지를 추론해본다